내가 당신을 사랑할 이유는 많았지만
당신이 날 사랑할 이유는 몇 없었기에
하야시 아키라와 키리에에 대하여

하야시 아키라는 임무를 수행하던 키리에를 세 번이나 맞닥뜨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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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야시 아키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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키리에
1 독서

키리에는 율리시스, 전쟁과 평화 같은 고전 도서와 국제정세의 이해 같은 정치·경제 도서를 쌓아두고 수시로 읽을 것 같은 느낌이다. 반면 아키라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도 달에 걸쳐 읽을 것 같다. 한 다섯 페이지 읽음 잠이 오기 시작해 속으로는 '수면 유도의 기적'이라 부를 거 같다.
아키라가 궁금해하는 책의 내용은 키리에의 머릿속에 대부분 다 있기에 원하면 언제든 들려줄 수 있다고 한다. 아키라는 머리만 대면 잠드는 유형인데, 책을 펼치면 머리를 대지 않아도 잠든다. 하지만 키리에가 조곤조곤 읊어준다면 밤새 들을 수 있다. 로미오와 줄리엣, 폭풍의 언덕 같은 비극적인 사랑 얘기를 흥미로워할 아키라이다. '행복하게 살았답니다.'라 끝나는 얘기는 그 이상 상상할 거리가 없지만, 비극적인 사랑에 대해서는 키리에와 여러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보다 재밌기 때문이다.
키리에가 자취를 감춘 이후에는 새벽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걸어가던 중 이제 막 문을 여는 서점에 끌릴 아키라이다. 책과 거리가 먼 사람만 같은데 책 깨나 읽는 사람이 아니면 안 들어가는 코너에서 신중히 몇 권을 골라온다. 다음 아르바이트를 가려면 자야 하는데 한참 책을 읽었을 거다. '행복하게 살았답니다.' 같은 얘끼를 많이 읽어달라고 할 걸 그랬다고 후회하면서. "키리에씨라면 어떤 선택을 할 건데요."라고 중얼거리며. 때문에 아키라가 비극을 흥미로워했다는 게 둘의 관계에 대한 복선처럼 느껴진다.
2 '나츠마츠리'

아키라는 짙은 푸른색 계열의 유카타를, 키리에는 연보라색 베이스의 유카타를 입고 나올 것이다. 아키라의 것에는 파도나 물고기가, 키리에의 것에는 나팔꽃이 그려져 있을지 모른다. 팔짱을 낀 채로 돌아다니며 뜰채로 금붕어도 건지고, 여러 간식도 사서 먹고, 불꽃놀이도 지켜보겠지. "매일이 오늘 같으면 좋겠어요!"라고 어린 아이처럼 웃는 아키라다. 그 뒤로 하늘엔 불꽃놀이가 한창이었을 것이고. 키리에는 이런 나라별 축제는 대수롭지 않은 것임에도 아키라가 행복하게 웃으니 이런 것에 행복할 수 있구나 싶어 덩달아 웃어 보인다고. 아키라는 웃어주는 키리에를 넋을 잃고 가만히 쳐다본다. 알고 지낸 한 아저씨로부터 "둘이 언제 결혼할 거야!"란 말을 들은 게 생각났을 거다. "집에 축의금 봉투 있어요? 어서 하나 마련해둬요."라 너스레를 떨었을 아키라이다. 하지만 키리에에게는 원래 남의 일에 관심 많은 아저씨니까 신경 쓸 필요 없다는 둥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으며 키리에의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. 그러다가 "그, 그렇다고 결혼하기 싫다는 얘기는 아니에요."라고 덧붙였을 것이다.